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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국회의원 프로필 나이 학력 고향 페이스북 유튜브 바로가기 홍준표 관련주 테마주

by 리베로수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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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국회의원 프로필 나이 학력 고향 페이스북 유튜브 바로가기 홍준표 관련주 테마주

 

출생 고향
1954년 12월 5일 (66세)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서동마을
(現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재임기간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
2012년 12월 20일 ~ 2017년 4월 9일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정치인. 現 제21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구 을)

 

본관
남양 홍 씨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수성 동일하이빌 레이크시티


1982년 사법시험(제24회)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제14기) 수료 1984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데뷔

 

 

 

 

 

 

황교익 프로필 고향 학력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이재명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조직폭력배의 범죄를 성역 없이 수사한 검사

활약상이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소개 일명 모래시계 검사 이후 그 인지도 바탕으로 YS에게 발탁 신한국당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

4선 국회의원과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 원내대표 및 당대표를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를 지냈다. 

 

헌정 사상 최다 표차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임에도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를 누르는 등 기대 이상으로 선방했고, 이로 인해 당내 입지가 더욱 커져 다시 한번 당대표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나 2018년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 

 

2017년 도지사직을 중도 사퇴하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자유 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2위로 낙선

 

이후 변호사 개업을 신청하고 유튜브 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 통합당의 컷오프에 불복하여 탈당 후 대구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1년 6월 24일 국민의 힘으로 복당 하였고, 현재 jp희망캠프를 조직하여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 참여


약력 학력


1966.2. 합천 국민학교 졸업
1969.2. 영남중학교 졸업
1972.2. 영남고등학교 졸업
1978.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1981.6. 육군 이등병 소집해제 (방위병)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1984.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1985.1.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87.6.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
1988.8.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
1989.5.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 1부 검사


1991.2.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1992.8.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1994. 법무부 특수 법령과 검사
1994.9. 국가안전기획부 국제범죄 수사지도관
1995. 법무부 특수 법령과 검사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송파구 갑 / 신한국당)
1996. 제15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1996. 제15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1996. 제15대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
1998. 제15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1998. 제15대 국회 후반기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1999.1. 워싱턴인터내셔널센터 객원연구원
2001.8. 한나라당 총재 특보


2001.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2001.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2002. 제16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2002.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2002. 한나라당 정책본부 본부장
2002. 한나라당 동대문구 을 지구당 당협위원장
2003.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전략기획위원장
2003. 한나라당 공천 심사위원


2004.6.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2005.2.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2006. 한나라당 서울특별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2006. 제17대 전반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6. 제17대 국회 한국·말레이시아 의원친선협회 회장
2006.6. 제17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장


2007.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
2007.6.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2007. 한나라당 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2008.5.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2008.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2008.5. 제15대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8. 국회 기후변화·에너지대책 연구회 대표의원
2008. 제18대 국회 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

2008. 제18대 국회 한국·호주 의원친선협회 회장
2008.6. 제24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2008.12. 제10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9.2. 제1회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2010.7.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0.8.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2010. 제18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2011.7. 제10대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2011.11. 한국 반부패정책학회 청렴대상
2012.12. 제35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5기 / 새누리당)
2014.7. 제36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6기 / 새누리당)
2014.11. 제49회 전국 여성대회 우수 지방자치단체장상
2017.3.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 한국당 후보


2017.7. 초대 자유 한국당 대표
2020.5. 제21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을 / 무소속)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2020.12. 폭정 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 연대 공동대표
2021.5. 제21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2021.8.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생애

1953년 11월 20일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서동마을에서 2남 3녀 중 넷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때 이름은 홍판표(洪判杓). 그의 아버지는 무학에다 소작농으로 경제적으로 무능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어머니가 고리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잡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친구를 사귈 수 없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했고 초등학교에서도 1등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영양 부실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몸이 야위었고, 초등학교 졸업 당시 키가 124cm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창녕군과 합천군, 대구시 등지를 자주 이사하며 전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6군데나 전학을 다닐 정도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도시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합천군을 벗어나 대구시 영남중학교에 진학했다. 숙식은 대구 직물 공장에 취직한 누나 방에 얹혀살며 해결하기로 했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부친과 8km를 걸어 대구행 버스를 탔는데, 무거운 지게를 진 부친 뒤에서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절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대구 대명동 사글셋방에서 누나들이 싸주는 꽁보리밥 도시락을 먹고 공부했다.

홍판표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결국 대구로 이사 왔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셋방 단칸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사과 행상을,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하루 4~5시간만 자고 공부해 영남중학교에서도 1등은 그의 차지였지만 명문 경북고등학교가 아닌 영남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렇다고 영남고가 좋지 않은 학교였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 지역에서는 비교적 준수한 수준의 학교였다.

 

하지만 경북의 일류 명문이고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본인에게 콤플렉스였고, 출세에도 핸디캡이 됐다. 심지어는 대학 첫 소개팅 자리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이 나왔는데 그녀가 "집이 어디냐?", "대구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냐?" 하기에, "영남고다" 그랬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24] 이때 상처를 받은 이후로 미팅 종류의 활동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밑에 첨부된 그의 대학 시절 사진만 보더라도, 그의 지인들은 당시 홍판표 하면 그가 늘 신던 검정 고무신을 떠올리곤 한다. 소개팅녀의 행동이 혹시 영남고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패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출신고를 묻는 그녀에게 순간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콤플렉스는 검찰 생활에까지 이어졌는데,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등학교 출신들이 즐비한 검찰 조직 내에서도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중학교-고등학교 동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만연하여 비주류의 설움을 느껴야만 했고, 법학과 졸업생도 아니었으며 가난한 흙수저 출신인 것까지 더해져서 검찰 내에서도 그야말로 개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는 커리어에서 평생 아웃사이더 또는 비주류를 자처 그 원인으로 출신고등학교에 대한 열등감, 자신의 가난했던 집안 배경 콤플렉스를 꼽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원래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다고 한다. 경북대가 국립대라서 학비가 저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아버지가 일체의 학비와 생활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라고 해서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구광역시 토박이가 아닌 아버지가 시장통에서 무시당하는 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30]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검사가 되기로 결심

 

이에 1972년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진학

대학생 시절 때는 공부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5층 여관집에 출퇴근 가정교사를 하면서 1살 많은 제자의 유혹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생활 4년 중 고연전조차 딱 한 번밖에 참여하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다.

 

 그 와중에도 2학년 때인 1973년 동아일보 광고 사태 때 선후배들과 중지를 모아 동아일보 격려 광고를 처음 낼만큼 정의감이 강했었다. 때문에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고. 대학은 어떻게든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시국 행동은 못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동기로는 강희락 경찰청장,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승재 해양경찰청장, 김성곤(1952) 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송하진 전북지사 등이 있다.

그가 대학생 시절 기거하던 종암동의 하숙집 동기들도 유명하다. 당시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이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지척인 현재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때여서, 하숙집 동기들이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이때 같이 친하게 지낸 이들이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서울대학교 경제학과 73학번),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서울대학교 무역학과 72학번), 서충일 전 STX 팬오션 부사장, 정해문 전 주태 대사 등이었다.

그의 진학 후 더 이상 대구광역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뒷집에 불이 났는데 가족들 집까지 다 타서 가족들은 때마침 부친이 현대조선소의 경비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울산으로 옮겨갔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어느 겨울밤,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 아버지[35]가 목욕탕에나 봄직한 플라스틱 샤워의자에 앉아 칼바람 부는 바닷가 모래밭에 불을 쬐고 있던 모습을 봤는데 그때 "불공평한 세상 한 번 바꿔보자"라고 다시금 결심했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 당시 부친이 추운 모래밭에서 근무하니 회사에서 술이라도 먹고 버티라고 막소주를 줬다고 한다.

 

고된 노동과 무리한 음주로 몸이 상해서인지 부친은 10개월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역시도 "세상이 뒤집혔으면..." 하는 생각을 지닌 인물이었고 박정희 유신반대 학생운동을 하며 총학생회 지하유인물을 작성하다가 글씨체로 추적당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8시간 동안 엄청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문제적 인간, 홍준표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남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마지막 유언을 따라 더 이상 나가지 않았고 성북경찰서에서 풀려나면서 고시공부를 하러 절에 들어간다.

사법시험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72학번인 그가 6년이나 병역도 미루고 졸업도 미뤄가면서 고시 생활을 이어가던 중 고려대학교 앞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서 일하던 당시 20세(홍판표와 3살 차이) 여자 은행원 이순삼에게 반했다.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숫기는 물론 땡전 한 푼 역시 없었지만, 같은 은행에 다니는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데이트를 하고선 "나는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 나와 앞으로 같은 집에서 살 생각이 있으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도서관 4층으로 찾아와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월요일 저녁에 이순삼은 정말로 도서관으로 찾아왔고 홍판표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불문곡직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같이 살자"는 말로 프러포즈를 했다.

전라북도 군산시에 살고 있는 장인, 장모 될 분들을 만나러 둘이 내려가서는 인사를 드렸는데, 홍판표가 마음에 안 들었던 장인은 뒤에서 딸에게 "그거 구름 잡는 놈이다. 택도 아닌 놈이다. 그런 놈이 고시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했다고. 장모는 "사람 착해 보이니 잘해봐라" 그랬다며, "어떠셨대?" 하고 묻는 그에게 이순삼이 솔직히 털어놨단다. 

 

그 덕에 "장모는 혹 용돈을 드려도, 장인어른은 용돈은커녕 26년간 내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라고 훗날 2017년 자유 한국당 후보 군산시 유세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정작 마지막에는 홍준표가 장인 모시고 병 수발하고, 임종도 지켰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장인이 "옛날에 잘못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사과하자, 이에 홍준표는 "잘못한 줄 이제 알았습니까. 편하게 가십시오."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가 홍판표는 그녀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신접살림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 7동 지하 단칸 셋방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사법시험에는 계속 떨어졌고, 결국 군 복무를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48kg으로 워낙 말랐기 때문에 방위병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사법시험에 붙지 못해 고향에 가기 창피했던 그는 처가가 있던 전라북도 부안군의 해안초소에서 복무하였다.


그렇게 단기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아내의 5년에 걸친 헌신적인 뒷바라지 끝에 30살, 호적상 29살인 1982년, 드디어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어 입교한 사법연수원 동기(14기) 생으로는 추미애, 주호영, 신기남, 정종섭, 권순일, 이기택, 이석태, 채동욱, 김진태 등이 있다.

 

 

 

 

 

 

홍준표, 대통령 4년 중임제 공약 국회의원 200명으로 축소


각 분야 주요 공약 발표해
경선 후보 정책 발표회 참석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홍준표 의원이 7일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약

홍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경선 후보 정책 발표회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치 분야 공약을 내놨다. 다만 홍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위한 구체적인 개헌 방향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홍 의원은 국회의원 숫자를 기존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겠다고도 했다.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상원 50명, 하원 150명 정원에 비례대표는 폐지하겠다"는 게 홍 의원 공약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도 약속했다.

홍 의원은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대폭 축소해 시장 자유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어 "강성 귀족노조 패악을 막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고, 공공부문 '쿼터(4분의 1) 아파트 도입' 등 공급 확대 공약도 내놨다. 또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대폭 구조 조정하겠다고도 했다.

안보·국방 정책으로는 상호 불간섭주의와 체제 경쟁주의를 원칙으로 독일식 통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또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 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 협정을 맺어 북핵 위협에 근원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모병제와 지원병제 전환 추진도 공약했다.

홍준표 증시서도 돌풍 관련주 상한가 속출 홍준표 관련주 테마주

MH에탄올·보광산업 등 상한가
홍준표 지지율 강세에 테마주 상승

경남도지사 시절 인연, 추진 사업

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 의원이 지지율에서 약진하자 덩달아 정치테마주도 급등

 

 

 

 


 MH에탄올(023150)

  • 29.57% 오른 상한가 1만 2750원에 거래 이날 9890원에 출발한 MH에탄올은 개인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강세 마감
  • 1978년 7월 설립된 MH에탄올은 진해오션리조트의 최대주주
  • 홍 의원이 경남도지사 당시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진해 웅동 복합리조트 사업이 재조명을 받자 MH에탄올도 홍 의원 정치테마주로 분류된 것으로 예상


보광산업(225530)

 

  • 29.56% 오른 상한가이자 신고가 1만 300원에 마감
  • 홍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란 점
  • 과거 경남도지사 시절 추진했던 밀양 신공항 관련주로 분류 홍준표 테마주
  • 2004년 8월 골재 생산 전문업체로 아스콘과 레미콘 등을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사

홈센타 홀딩스(060560)

 

  • 보광산업을 계열사로 보유 26.04% 상승 마감
  • 홈센타 홀딩스는 1988년 소방설비공사를 목적으로 설립
  •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한 뒤 2017년 1월 지주회사로 전환


* 이 밖에 경남스틸(039240)과 한국선재(025550), 무학(033920) 등도 각각 20.25%, 19.42%, 13.66% 상승 마감

 

이들 모두 장중 두 자릿수 상승률로 오르면서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홍 의원이 경남도지사 시절 추진하던 사업과 관련이 있거나 당시 인연을 맺으면서 '홍준표 테마주'로 분류됐다.

앞서 홍 의원은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국민의힘 대세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치고 여권의 '원톱'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를 꺾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선 후보 적합도(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 포인트)에서 홍 의원은 13.6%를 기록하며 여야 후보 중 3위를 기록했다. 오차범위 내이지만 홍 의원이 이 기관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1.7%) 보다 앞선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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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원이 윤 전 총장을 제치는 '골든크로스'도 이뤄졌다.

알 앤 써치가 경기신문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 포인트,)에서 홍 의원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32.5%로 1위를 차지했다. 윤 전 총장은 29.1%로 오차범위 내 2위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치 테마주는 연관성이 증명되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개별 기업의 실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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